[내가 만난 e-사람] 빛의 이미지를 만들어 소통시키는 메신저, 아티스트 안종연을 만나다 by 지식소통 조연심

 

광화문 교보문고의 좌화취월’, 영월 동강의 수광영월’, 제주 섭지코지의 광풍제월을 완성한 설치미술가, 빛의 작가, 빛의 이미지를 만들어 소통시키는 메신저, 특수제작한 유리구슬을 통해 따뜻한 영향력을 전달하는 아티스트! 미술가 안종연을 일컫는 표현들이다. 사람을 중시 여기는 철학(Philosophy)에 시대를 앞서가는 과학(Science)을 더해 가슴을 울리게 하는 예술(Art)로 승화시키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는 안종연 작가님을 만났다. 2008년 코스모가 선정한 파워우먼 안종연, 그녀의 삶 속에 녹아 있는 따뜻한 에네르기를 만나러 함께 떠나 보자.

 

모하Moha 안종연 작가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요?

 

한 마디로  창작활동입니다. 평면, 입체, 설치미디어, 공공미술 등 전방위 장르의 창작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변 환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막힘없이 열려있는 미술품 속에 내재된 기운을 표출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공공미술의 목표입니다. 

 

재능(Talent)을 찾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결핵에 걸려 시골로 보내졌고 전 그 시절이 유배를 갔던 것처럼 외롭고 아팠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년시절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목공소 할아버지네서 하루 종일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나무 깎는 냄새, 대패에 둥글게 말려 올라간 나무껍질과 수북하게 쌓이던 톱밥, 뚝딱뚝딱 할아버지의 망치와 못의 하모니 속에 결 고은 가구가 만들어지던 기억은 지금도 제 마음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 고교를 거쳐 대학 시절까지 작은 체구의 저는 언제 어디서든 무언가 만들고 그릴 수 있었습니다. 늘 공구 상자를 준비하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미술선생님은 저를 미술부로 뽑아 가면서 너는 멋진 작가가 될 거야. 네가 최고다.”라고 암시를 주셨습니다. 땡땡이 무늬의 원피스를 자주 입으셨던 정정숙 미술선생님이 저를 각종 미술대회에 데리고 다녔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대학 때 은사님이셨던 정건모 교수님은 81년 첫 개인전 서문에 "부지런히 다니며 그림을 그리는 상당히 바쁜 아이로 기억된다고 써 주셨습니다.

다양한 공방시리즈를 통해 1982년부터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인 1989년까지 저를 공방작가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거기다 최근 선보이기 시작한 렌티큘러는 보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달라 보이는데 여러 층의 레이어를 통해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습니다. '' 하나에서 시작하여 전방위 작업으로의 확산이 요즘 화두인 OSMU(One Source Multi use)와 일치하는 셈이지요.

 

저는 어릴 때부터 빛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빛은 생명의 근원이고 자연의 빛에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어느 작가가 내는 색깔보다도 맑고 아름다운 빛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빛을 이용해서 구도를 잡은 렘브란트를 좋아했고, 퐁피두미술관 광장에 복원해 놓은 루마니아 출신의 조각가 브랑쿠시의 파리 작업실에 갔을 때는 지붕천장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보고 물건들이 다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자연스럽게 빛을 제 작업의 화두로 삼게 되었습니다  

 

2010_The New Days Dawning 2/ Moha 안종연

 

2010_The New Days Dawning 3 / Moha 안종연

 

1981년 개인전을 시작해 이듬해부터 3년 연속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선으로 입상을 하면서 저의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97년 테크노마트 미술장식품을 시작으로 2000년 국립암센터 상징물 공모전에서 당선되면서 현재 건립되어 있는 국립암센터 상징조형물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건너가 배운 것 중의 하나는 설치미술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이 구조안전이었습니다. 당시 국립암센터 조형물 아래는 지하주차장이 위치해 있어서 무거운 조형물을 설치한다는 것은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예측해 다른 사람들보다 가볍게 만든다는 원칙으로 만들었는데 이 생각이 통한 것입니다.  

가슴을 울리지 않는 공공미술은 폭력이라고 생각하고 공감과 소통을 기본으로 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훈련(Training)을 해 왔는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좋은 훈련법은 바로 학습입니다. 배우는 것만큼 자신을 제대로 훈련시키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늦은 나이인 서른 일곱에 공공미술을 배우기 위해 뉴욕의 ‘School of Visual Arts’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가나화랑 전속작가로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었던 나는 유학을 간 후 미국 대학 교수님으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너의 작품은 말이 많으냐? 너무 복잡하다. 한 가지만 말해라.”

One Point Message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나만의 방법을 발명하여 나의 방식대로 만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뉴욕 시절과 대학원 과정을 마칠 때까지 6년 동안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잔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 습관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하루 4시간 정도만 자나 봅니다. 외롭고 힘들기는 했지만 문화충족으로 달래가며 견뎠고 현대 미술의 중심지에서 공부했다는 경험이 지금의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만난 선생들은 직접 보여주면서 가르치는 기법을 중시하고 공공미술을 할 때 모양뿐만 아니라 실용성까지 감안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통해 미술과 과학이 만나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S.V.A.(School of Visual Arts) Fine Art Depart에서는 세계적인 예술가를 초대해서 배울 수 있게 함으로 새로운 시각을 갖는 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유학 시절 문화예술의 트랜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열정적인 예술가들은 어떻게 사는지를 보고 들었습니다.

결국 평면적 조형세계에 머물던 제가 미국 유학을 통해 입체적 조형물, 미디어 아트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주도 섭지코지 아고라 '광풍제월' / 광화문 교보문고 ' 좌화취월' / 영월 동강 '수광영월'

 

 

뉴욕필름 아카데미에서 마주쳤던 로버트 드니로는 보기에는 수수하고 평범해 보이는 이미지였지만 눈빛을 보니 강렬한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 후 만났던 각종 분야의 실력자들의 눈빛에도 로버트 드니로에게서 느꼈던 것 같은 강렬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의 외모도 수수하고 평범해 보일 수 있겠지만 눈빛만큼은 실력자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강렬한 그 무엇을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몸으로 부딪히고 발로 뛰고 배우며 깨우쳤기에 조금 더디지만 돌고 돌아 나만의 방식으로 창작할 수 있게 되었고

제대로 훈련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오프라인으로 소통(Talk)하는 법은?

 

그동안 저는 오프라인 소통 위주로 작업을 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가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겠지요. 개인전을 열고 갤러리Gallery나 뮤지엄Museum을 통해 소통을 해 왔습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작품이 어디에 놓이느냐입니다. 작품이 놓일 공간에 대해 까다로운 안목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래야 작품의 원래 의도대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정이 높고 하얀 벽에 중간에 기둥 없이 시원시원하게 뚫린 공간이 제가 선택하는 전시공간입니다.

홍콩, 상해, 북경 아트 페어Art Fair를 통해 해외 시장에 진출했고 올해 6월 부산국제아트쇼, 9월에는 키아프KIAF 국제아트페어,  11월에는 아랍 아부다비 아트 페어에 참가 후 미술관 전시도 이어집니다.

 

2007_서울시립미술관/Moha 안종연2008_시안미술관 /Moha 안종연2010_Ezen of Light/Moha 안종연

 

 

 

 

제가 을 통해 소통을 하는 이유는 생성과 소멸, 시간과 우주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빛은 한 순간을 존재하다가 사라집니다. 아침에 동이 틀 무렵보다 해질녘 황혼이 더 아름답듯이 빛은 사라지는 그 순간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사라지는 그 찰나의 빛을 붙잡아두고 싶어서 발광다이오드(LED)를 통해 빛의 흐름을 천천히 흐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빠르게 흐르는 빛을 잠시 잡아두기 위해 과학의 힘을 빌어 느리게 흐르도록 하는 것도, 그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2010_Ezen of light (2)/Moha 안종연

2010_빛의영혼(학고재) / Moha 안종연

 

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저는 스테인레스를 활용해서 작품을 만듭니다. 스테인레스에는 물빛이 살아있으니까요.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이지만 가장 현대적 표현이 가능한 유리를 쓰는 것도 물과 빛을 모두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0_고산자(학고재전시)/ Moha 안종연

 

 

에네르기 즉 ()의 소통이 작품에서도 중요합니다.
무겁고 갇혀 있는 느낌이 싫어서 작품의 속을 막지 않고 안이 훤히 보이게 작업을 합니다. 열려 있어야 에너지가 통하고 소통이 됩니다.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부합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속성을 가지면서도 언제 봐도 새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어야 오래도록 소통할 수 있습니다.

 

 2011_Kaleidoscope 1 /Moha 안종연2011_Kaleidoscope 2/Moha 안종연

 

시간(Time)을 견디는 지혜는?

 

뉴욕 S.V.A. 대학원 마지막 학기 때 Art World에서 작가로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가르쳐 주셨던 '루치오 파치' 교수님의 말씀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예술가의 전성기 주기 그래프는 21년 주기로 움직인다. 7년을 서서히 올라가고 7년간 유지하며 다시 7년을 서서히 내려온다. 피카소도 평생 단 한번의 21년 주기를 맞았다. 현대미술의 거장이었던 스페인 작가 안토니 타피에스만 평생 2번의 주기를 가질 수 있었다. 너는 대기만성형이다. 그러니 천천히 너의 길을 가라.”

 

예술가는 단거리 경주 선수가 아니라 마라토너입니다. 죽기 전까지 늘 새로 시작하는 게 바로 예술가의 삶입니다. 어제까지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오늘 좋은 작품을 하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이기 때문입니다. 매 순간순간 처음 시작하는 것이라 성취감을 느낄 수 없어서 괴로워하는 것 또한 저의 모습입니다.

 

아버지 /Moha 안종연

 

 

저에게는 미국의 9.11사태와 버금가는 인생 일대의 큰 사고가 있었습니다. 작업을 하다가 엄지발가락 뼈가 부스러지면서 1년간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작품활동을 접고 힘든 투병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시작한 일이 조그만 스테인레스판에 한 점씩 점을 쪼아내어 판을 완성하고 그것들을 마그네틱으로 붙여 커다란 작품으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점 하나는 추상이지만 그 추상이 모이면 구체적인 모습을 갖춘 구상이 된다는 것을 작품으로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이 바로 빛의 여백 Blank of light”이었습니다.

 

저는 매10년 계획을 세워 그대로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20,  나는 작가다를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30, 유학을 통해 내면의 열등감과 외로움을 극복하고 환한 빛을 표현하는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40, 유학생활을 마치고 제로에서 시작하는 나를 찾았습니다. 

50, 각종 공공미술 작품들이 공모에 당선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60, 계획은 내 작품이 전세계를 누비며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작품을 하지 않을 것인가?’

그저 숨 쉬듯 작업하는 것이 제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내 인생의 최고의 때(Timing)?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지금이 바로 내 인생의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만든 작품이 커다란 크레인에 매달려 어딘가에 놓이는 꿈을 꾸곤 했습니다. 그 꿈은 영월 동강, 제주 섭지코지, 국립암센터 등에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꿈이 이루어진 현장에서는 꿈처럼 달콤하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작업을 하지만 전 세계를 누비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제 그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소통하고 싶습니다.

 

 

 Moha 안종연 작가

 

살아있기에 오늘도 숨 쉬듯 작업을 한다고 하는 아티스트 안종연.

누구나 좋아하는 일을 하고 또 그 과정을 즐기며 열심히 산다면 그 보상은 반드시 온다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작가로 평생을 살고 자신의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다는 그녀는 해외시장에서 외화를 벌어들여 가난하지만 가능성 있는 작가들을 후원, 양성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물과 빛을 가까이 할 수 있어 양평에 살면서 루이즈 부르주아의 열정을 닮아가려고 노력한다는 안종연 작가.

작품을 위해 인문학 강좌를 수강하고 끊임없이 탐구하며 작업 자체가 '기도' '명상'이고 '철학'이라는 그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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